전라북도 고창은 크고 화려한 관광지는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조용히 걷고, 자연을 느끼고, 과거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선운사의 고요한 숲길, 학원농장의 계절이 담긴 풍경, 그리고 고창읍성의 돌담길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여행지였습니다. 이번 글은 제가 직접 다녀온 고창의 한적한 세 곳을 소개해드립니다.
선운사, 숲길과 고찰에서 마주한 평온함
선운사는 봄이면 벚꽃,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조용한 분위기를 간직한 곳입니다. 아침 일찍 방문했더니 주차장부터 새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하더군요. 입구부터 사찰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천천히 걷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사찰 경내는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이었어요. 대웅보전 앞마당에 앉아 멍하니 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일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선운사 동백나무숲은 계절마다 색이 바뀌며 걷는 즐거움을 줬고, 내부에는 조용한 암자도 있어 마음 챙김 여행지로 손색없었습니다.
학원농장, 계절의 시간을 그대로 담은 풍경
학원농장은 일반적인 관광지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로컬 농장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죠. 제가 방문한 건 5월 초였는데, 들판 한가득 청보리가 자라나며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은 초록빛 물결이 참 인상 깊었어요.
특히 보리밭 사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걸으면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중간중간 나무 그늘과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았습니다. 간이 카페에서 마신 현미차 한 잔과 함께 바라본 풍경은 이 여행에서 가장 여유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입장료가 거의 없거나 매우 저렴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이었습니다. 일부 구간은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포인트라고 하더군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고창읍성, 옛 정취가 살아 있는 돌담길
고창읍성은 조선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을과 어우러진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졌고, 걷는 내내 시골의 고즈넉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읍성 안쪽은 전통가옥과 고창객사 등 옛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지역 어르신들이 조용히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관광지라기보단 마을 그 자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성곽 위로 올라가면 주변 마을과 들판, 그리고 멀리 선운산 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해질 무렵이면 노을과 고성의 풍경이 어우러져 정말 운치 있었어요.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특별한 연출 없이도 그대로 엽서 같았고요.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고창의 시간
고창은 목적지를 향해 급하게 달리는 여행이 아니라, 머무르며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선운사에서의 사색, 학원농장에서의 바람, 고창읍성에서의 옛 시간. 이 세 곳은 마음을 채우는 데 큰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요란한 볼거리보다 고요한 여유를 원하는 분이라면, 고창은 분명 만족스러운 여행지가 될 겁니다. 특히 봄과 가을엔 날씨까지 도와주는 최고의 시즌이죠. 한적한 길을 걷고, 깊은 숨을 쉬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은 분들에게 고창을 꼭 추천합니다.